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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을 말하다/브랜드 이야기

[동원그룹 History] ①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동원산업, 동원그룹의 모태가 되다



오늘의 동원그룹이 있기까지 이어져 온 46년의 역사. 오늘은 ‘역사채널 D’를 통해 동원 여정의 첫 걸음이었던 동원산업 창업기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동원산업이 설립된 1960년대 말, 한국의 경제는 제1,2차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공업화가 추진되고 자립경제의 기반을 다지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경제는 눈부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고, 수산업 부문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수산업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수산업의 성장은 선박의 수급과 수출여건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새 선박을 건조하면서 항구에 묶여 있었던 중고 어선이 증가해 저렴한 가격에 중고 어선을 들여올 수 있었고, 횟감용 고급 참치회 수요가 급증하면서 많이 잡기만 하면 수출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기회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주시하고 있었던 청년, 그는 바로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이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바다를 누비던 그가 푸른 꿈을 품고 설립한 동원산업 이야기, 지금부터 청년 김재철의 창업 스토리를 함께 만나 보실까요?







당시 35세 젊은 나이였던 김재철 회장은 8년간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며 쌓여온 역량 덕분에, 업계 지인들과 다양한 외국업체들로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해보라는 권고를 자주 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969년, 그는 그 동안 승선하며 모은 돈 1천만 원을 자본금으로 하여 동원산업을 창립하게 됩니다. 

그 해 그는 국내외에 쌓아둔 신용을 자산으로, 일본 ‘도쇼쿠’의 미국 현지법인 ‘올림피아 트레이딩’으로부터 37만 달러에 달하는 5백톤 급 어선 제31동원호와 제33동원호를 도입하였습니다. 당시 국내 경제사정으로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운 일이었는데요. 당시 사장이었던 청년 김재철은 외국회사도 인정한 신용만으로 외국에서 배를 먼저 도입하고, 어로작업을 통해 벌어서 이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해 오늘날 동원그룹의 서막을 알리는 힘찬 출항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김재철 사장이 10여 년 간 바다생활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첫 출어에 나선 선장의 능력에 어업회사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어로기술과 리더십을 갖춘 선장을 스카우트하는 데 고심을 거듭하였고, 선단장 시절 김재철 사장 밑에서 착실한 훈련을 받았던 이중기 선장을 중심으로 하여 45인의 최정예 선원을 구성하게 됩니다. 


당시 원양 업계는 호황기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원양어선을 타고자 앞다투어 수산회사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에 김재철 사장은 한 명의 선원을 뽑는데도 신중을 기했고, 지원자들의 면접에 일일이 참여하여 그들의 개척자 정신과 능력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기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는 ‘신용’, 그 신용을 가진 ‘사람’에 대한 철두철미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동원산업의 출발은 어선의 현대화와 새로운 어장 개척으로 순조롭게 풀려 나갔습니다. 제31동원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탑재모선식’ 어선으로, 5백 톤 급 모선(母船)에 20톤의 작은 자선(子船)을 싣고 다니며 함께 조업하는 선박이었습니다. 여기에 항해술과 어로기술이 뛰어난 이중기 선장은 출어한지 4개월 만에 중간 보급 없이 만선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이 선장은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과를 올려, 인도양에 출어한 지 25개월만에 1백2십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원양어선 한 척이 이 정도의 외화를 획득한 것은 당시로서는 의미 있는 업적이었답니다. 


이후 제31동원호에 이어 다른 동원호들도 인도양 어장 개척에 나섰고, 제35동원호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과 사할린 해역의 북해도에서 오징어채낚기 조업을 실시하여 좋은 실적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국내 어선으로서 최초의 오징어채낚기 어업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요. 


동원산업은 인도양과 사할린 해역에 이어, 1971년 북태평양에까지 진출하여 명태조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듬해 1973년에는 제801동원호가 아프리카 가나 어장으로 출어함으로써 대서양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광활한 어장을 개척해 나가며, 김재철 사장은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비롯한 테마 등지에 해외기지와 지사가 설치되었고, 동원은 원양어업의 선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답니다. 당시 1차 산업에서는 이 같은 실적을 기록한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동원의 실적은 매우 높이 평가되었지요. 


원양어업은 전량이 수출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원양어업을 통해 잡은 생선은 이를 가공하여 판매할 수 있는 국내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외국 상사를 통해 판매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실적으로 동원산업은 창업 1년 만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창업 3년에 이르렀을 때는 600%에 달하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답니다.



말단 항해사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신용, 1천만 원의 자본금, 3명의 직원, 2척의 중고어선 자본만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46년이 지난 현재 세계적인 수산기업으로 거듭난 동원그룹을 일궈낸 김재철 회장. 그 출발점엔 바다의 미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창업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김재철 회장과 동원그룹이 오늘 이 순간도 만들어가고 있는 동원의 역사. 다음 시간에는 동원의 본격적인 ‘성장기’를 담은 역사채널 ⓓ 스토리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