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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즐기다/리빙&컬쳐

[청춘동원 서포터즈] 알고 있나요? 서울의 근대건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천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가장 큰 도시입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만큼 많은 건물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서울에는 빌딩부터 시작해서 한옥, 고궁같이 아주 많은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서울에도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배경 같은 근대 건축물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짧게는 70년에서 길게는 100년이 넘는 시간 전에 세워진, 서울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양식의 ‘근대건물’들을 소개합니다. 여행하듯 편안하게 걷는 기분으로 함께 길을 따라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곳은 중구 정동길 41-11에 있는 ‘덕수궁 중명전’ 입니다.  찾아가는 방법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을 올라오다 보면 정동극장이란 곳이 나옵니다. 극장을 조금 지나쳐 걷다 보면 좁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그곳 안으로 들어가면 중명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중명전은 1897년 대한제국의 황실 도서관으로 러시아 건축가인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란 사람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본래 ‘수옥헌(漱玉軒)’이라는 이름으로 사용 목적은 황실 도서관이었지만 1904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큰 화재가 일어났고 그 이후 고종황제가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며 중명전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1905년11월18일. 일본군인 약200여 명이 대포를 동원하여 무장한 상태로 무력시위를 펼치며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 후 화제로 전소하어 다른 형태로 복원 했다가 2009년 다시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여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처:네이버지도






덕수궁 중명전을 돌아 나와 두번째로 만나게 되는 곳은 중구 서소문로11길19에 있는 ‘배재학당 동관’입니다. 이곳은 1885년 미국의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입니다. 배재학당은 1886년 고종황제가 친히 배양영재의 줄임말인 배재학당이라는 명칭을 내렸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인 동관은 1916년 지어진 건물로 교실로 사용되었던 건물이고 그 구조와 모습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서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배재중,고,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네이버지도






세 번째로 만나는 곳은 배재학당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겉은 옛날 건물이고 속은 새롭게 리모델링 된 이 건물의 역사는 꽤 무겁고 슬픕니다. 이곳은 1995년까지 대법원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더욱 깊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1928년 지어진 이 건물은 고등법원,복심법원,지방법원 총3개의 법원이었던 건물입니다. 이곳은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거쳐 나간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건물의 형태는 근세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일반 고딕양식과는 다르게 뾰족한 아치가 아닌 둥근 아치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곳입니다. 

 

출처:네이버지도






네 번째로 찾아간 곳은 덕수궁 안에 위치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입니다.그 형태는 정면 54m, 너비31m의3층을 가지고 있고 영국건축가인  하딩(J.R.Harding)이 설계를 한 건물입니다. 1900년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09년 준공을 했고 그리스 건축을 조형으로 가지고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콜로니얼(식민지양식) 스타일의 건물입니다. 최초의 목적으로는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사신들의 접견을 위해 건축되었고 같은 기간에 서양식 정원과 분수대가 세워졌습니다.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4세 미만이라면 덕수궁 입장이 무료라고 하니 꼭 방문해서 대한제국의 정취를 느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네이버지도






덕수궁을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서울도서관이 다섯 번째 주인공입니다.1926년 일제에 의해 ‘경성부청’으로 건립되었던 이 건물은 일제가 경성부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청사입니다. 이곳도 아픈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해방 후 서울시청사로 사용되면서1962년 북관이 증축되었고 1986년 신관까지 증축되었지만 현재의 서울시청사를 짓기 위해 2006년에 철거되고 남아 있는 것은 본관만 남아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남기기 위해 외관을 보존하면서 서울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서울시민들의 쉼터이자 좋은 여가 공간이 되어주고 있는 곳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건물의 전면부에 대형 바늘 시계가 달려 있는데 이 시계의 이름이 ‘바라’라고 합니다. 


출처:네이버지도






그다음으로 만날 곳은 서울 도서관에서 광화문 쪽으로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일민 미술관’으로 사용 되는 ‘구 동아일보 사옥’ 입니다. 이곳은 일본인 건축가인 나카무라 마코토에 의해서 1926년 세워졌습니다. 건물의 특징은 1920년대에 유행한 돌출된 창(bay window)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와 벽돌조를 혼합한 양식이 입니다. 최초에 지하1층, 지상3층규모의 건물이었으나 뒤에 증축하여 지하1층, 지상6층(현재5층)이 되었습니다. 이 건물이 광화문 일대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서울의 도심부라는 이유도 있지만, 동아일보의 창간자인 김성수가 ‘조선총독부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광화문 네거리에 지어야한다’라는 뜻을 내세워 이곳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자주 보며 지나가던 곳이 항일역사의 상징이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감사한 곳입니다. 


출처:네이버지도






일민 미술관에서 종각 쪽으로 조금 걸으면 중구 남대문로 118에 위치한 광통관이라는 곳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1909년 세워졌고 대한제국 시기에 민족자본으로 만들어진 천일 은행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광통교가 있었기 때문에 광통관이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벽돌과 석재를 혼합하여 이오니아 양식의 벽기둥이 전면부에 배치되어 있고, 건물의 양쪽에 바로크풍의 돔이 설치된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은 근대 은행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고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가장 오래된 은행 점포라는 곳이 매우 역사적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현재도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문 상단에는 ‘조선상업은행종로지점’이라고 쓰인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출처:네이버지도






광통관에서 조금만 위로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건물인 ‘농협은행종로지점’이 이번에 소개할 근대건물입니다. 이곳은 1926세워졌고 일제치하 동아일보,조선일보와 함께 민간3대 신문의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옥으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조선중앙일보는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와 정간을 받았고 1937년 경영악화로 폐간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해방 후1956년부터 자유당 중앙당부로 사용되다 1970년에 이르러 농협중앙회에서 인수하여 농협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곳입니다.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입니다. 


출처:네이버지도





 


농협은행 종로지점에서 북촌 쪽으로 계속 걸어 올라가다 보면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학교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근대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학교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최초에 1917년 지어졌지만, 화재로 소실된 후1936년에 다시 지어졌고 석조 콘크리트 철근 방식의2층 건물입니다. 건물의 특징은 정문에서 바라보면 정면에 있어 건물이 떠올라 보이는 재미있는 형태입니다. 본관의 문을 지나가면 정원이 보이고 좌우로 동관,서관이 모두 보전된 곳입니다. 학교 자체가 근대의 문화유산을 담고 있는 곳이기에 ‘여기서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멋진 형태를 자랑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처:네이버지도






이번에 소개할 곳은 지금까지 소개했던 건물과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건물입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 다산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제가 세웠던9개의 제국 대학 중6번째인 ‘경성제국대학’의 이공학부건물 입니다. 당시 단일 대학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할 만큼 큰 규모와 전쟁으로 철재가 부족하던 시기에 군함 한 척의 철재를 특별배급 받을 정도로 일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옆 건물인 창학관 건축시). 원래 경성제대는 현재의 대학로(혜화)에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학생 정원을 늘리며 확충을 위해 도시 외곽인 공릉동에 이공학부 캠퍼스를 설립했습니다. 건물의 특징으로는 근대 건축의 양식 및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심부에8층 높이로 건물이 솟아올라 있고 중정을 구성한 ㅁ자형 배치가 있습니다. 경성제대 이공학부 건물이라는 점과 한국 근대공업교육의 최고학부라는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곳입니다.


출처:네이버지도

지금까지 서울 곳곳에 있는 근대건물과 그 건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건물들 외에도 많은 근대 건물들이 서울에 있고 전국적으로 보면 훨씬 많은 건물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진 문화재들이 무관심 때문에 또 필요 때문에 철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이 건축물들을 보존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꼭 그곳을 방문해서 건물이 주는 분위기를 느끼며 역사를 되뇌었으면 좋겠습니다.